안녕, 내일 또 만나

2024. 4. 24. 12:07movies

 
안녕, 내일 또 만나
열일곱 소년 동준의 학창 시절은 남달랐다. 사교보다 사유의 순간이 좋았던 동준의 유일한 단짝은 윗집 사는 형 강현. 그를 보며 동준은 다른 세상과 삶을 보았고, 그 세상을 동경하게 되었다. 어느 날 강현에게 찾아온 크나큰 시련은 연이어 동준에게도 큰 상실의 아픔으로 다가오고, 그동안 강현과 꿈꿔왔던 미래마저 잃어버리고 만다.이십여 년이 흘러 중년을 향해 가고 있는 동준은형 강현과 어릴 적 꿈꿔왔던 그 미래 속에서현재의 자신과 또 다른 내 모습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평점
9.1 (2023.09.13 개봉)
감독
백승빈
출연
심희섭, 홍사빈, 신주협, 김주령, 권동호

 

살다 보면 자기 자신이 싫을 때가 있다. 어쩌면 매일 그런 자신을 마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현실의 내가 아닌, 완전히 다른 내가 되고 싶을 때가 있다. 평행 우주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1995년 대구, 다른 내가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동준'에서 2020년 40대가 된 '동준'의 세 가지 모습을 볼 수 있다. 평생 대구에서 살다가 고교 선생이 된 '동준'. 유학 후 서울에서 대학교수를 하는 '동준', 부산에서 학원 선생이자, 소년원에 아들이 있는 아버지이기도 한 '동준'.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결국은 하나의 결말로 귀결되는 옴니버스 영화다.

처음 영화를 볼 때는 소설 "데미안"인가 싶었다. '동준'과 '강현'의 모습이 왠지,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모습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동준'에게 그 때 '강현'은 동경을 넘머, 사랑 또는 우주와도 같았다. 심오하게 이 소설의 심리학 분석 처럼 둘은 하나의 자신이 아니지만, 두 사람의 관계와 세 가지 평행 우주에서 '강현'은 '동준'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강현'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평행봉만을 쥔 채 건너는 어떤 인물을 존경한다고 했다. 마치 그의 모습처럼 인생도 가장자리에서 살아야 한다고, 지루하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일종의 반항심을 표현하면서. 중심을 잘 잡으면 떨어질 일은 없다고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충격으로 본인이 흐트러진다. 거기서 도대체 어떻게 외줄 타기 인생의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더 깊게 들어가면 무엇으로부터의 균형인지도 모르겠다. 밖을 바라보는 수많은 가면으로부터의 균형인가? 거기에 나의 내면 깊은 무언가 더불어서?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신경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성인이 되어버린 지금, 다시 내려갈 수 없는 높은 건물에 올라서 있는 것만 같아서 괴롭다. 그 아래 안전망이 있는지, 있더라도 정말 제구실을 하는 건지 제대로 평행을 맞출 수나 있을까. 그냥 단순히 떨어져 본다면 알게 되겠지만, 그게 너무 아플 것이 너무나도 분명해서 지루하더라도 안전한 땅에서 붙어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위안하면서 산다. 그래도 '강현'이 떠나간 '동준' 곁에는 어느 평행우주 속에서라도 누군가는 한마디씩 보듬어 주고 있었다.

요즘 세상은 자신을 싫어하기 너무나도 좋은 세상이다. 인간은 어쩔 수밖에 없는 사회적 동물이라서 필연적으로 비교하게 된다. 내 주변에서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전 세계에서 실시간으로 누군가를 비교하고, 비교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SNS를 볼테면 누군가가 멋있고 예쁘다고 생각하다가도, 무의식에서는 그러면 나는 왜 지금 이 모양 이 꼴인거지 라고 생각의 톱니바퀴를 돌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게 점점 가속도가 붙어서 내가 나를 죽이든, 내가 남을 죽이든 하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 내가 뭔지, 뭘 하고 싶은지, 꿈이 뭔지 그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은 이곳으로부터 아무것도 없는 공간으로 떠나고 싶다가도, 누군가의 관심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그저 모순적인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동준'의 평행우주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관심을 가지고 싶은, 처절한 사랑. 그중에서도 짝사랑은 시간 낭비와 종이 한 장 차이다. 나 또한 누군가를 짝사랑해 보았기 때문에 그 아픔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다. 나에게 관심이 없는 남을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도 머릿속으로는 알다가도, 언젠간 그 사람이 나의 세상이 되어 추앙하다가 잡아 먹혀버릴 것도 같았다. 이런 사랑 또한 내 욕심인 것 같아서 그저 혼자서 보내주었지만, 가끔 뭐 하면서 지내나 미련 아닌 미련처럼 남아있다. 그 사람과 내가 사랑하는 우주는 어땠을까 하면서. 누군가가 얘기했겠지만,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 살라'는 영화 속 대사가 다시 그럴 수 있을까 라는 마음에 아리면서도 따뜻했다. 

이 영화는 동명의 소설과도 같다. '강현'은 '동준'에게 이 책을 친구에게 보내는 아름답고 오래된 사과 편지라고 소개했다. 영화를 본다면 잘 알겠지만, 세 번의 미래에서 '동준'은 '강현'에게 뭔지 모를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거기서 '동준'이 보탠 것은 없지만, 그걸 보는 나도 어떤 감정인지는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미 벌어진 일에 내가 하지 않아서 생긴 후회랄까. 만약에 했더라면 뭔가 바뀔 수 있었을 것만 같았던 그런 느낌 말이다.

모든 만약은 고통이다(All Maybe is Pain)

'강현' 어머니의 마지막 시이자 미래에 '강현'의 책 제목이기도한 이 문장은 참 날카롭다. 세 개의 평행우주는 각 세계의 '동준'에게 만약이였고, 어디서나 후회와 미련은 남아있다. 결국 하나의 우주 속에서 밖에 살 수 없지만, 너무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잊고 산다. 그때 경찰차를 붙잡았던, 마침내 미래에 다시 만나게 되던. 현재에 갇혀서 다른 가능성을 눈치채지 못한다.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아무것이나 될 수 없는 현실이다.

쓰다 보니, 영화 얘기를 제대로 한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도 다시 보고 싶어지는 영화다. 따뜻한 소설을 한 권 읽은 느낌. 이런 영화도 참 간만이다.

 

대표 이미지 출처: TM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