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꿈이라는 아름다운 저주
지브리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는 전쟁의 한가운데서 비행기를 설계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히 '비행기'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꿈'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꿈이 얼마나 아름답지만 동시에 무거운 저주가 될 수 있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상과 현실의 충돌
어릴 적부터 하늘을 동경하던 지로는 훗날 비행기 설계사가 된다.
그의 강한 열망은 꿈속 세계와 이어지고, 이탈리아 항공 엔지니어인 카프로니 백작과 마주하게 된다.
카프로니 백작은 지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비행기는 아름답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전쟁에 이용된다."
지로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꿈을 멈추지 않는다.
지로의 비행기는 순수한 열정에서 비롯되었지만, 결국 가장 세속적이고 타락한 수단인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순수한 꿈일수록 현실이라는 거센 흐름에 스며들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는, 시대의 바람에 휩쓸리며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다.
지로의 비행기처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도 애니메이션을 저주받은 꿈이라고 표현했다.
감독은 다큐멘터리 "꿈과 광기의 왕국"에서 창작자들이 아무리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한다고 해도
결국 시대와 시스템 속에서 상처 입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바람이 분다"는 이러한 자각과 모순을 지닌 창작자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지로는 자신이 설계한 비행기가 누군가의 죽음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늘을 나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름다움을 향한 순수한 열망은 결국 전쟁이라는 현실에 이용되고,
그로 인해 상처받고 흔들리면서도 다시 고개를 드는 지로의 모습은,
스스로를 가해자라고 느끼면서도 계속 창작을 멈추지 못하는 감독 자신의 고백처럼 다가온다.
이 영화는 그렇게, 아름답지만 저주받은 한 인간의 꿈에 대해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나의 노래"가 비추는 시선
이 지점에서 떠오른 시 한 편이 있다.
나의 노래는 세속의 노래와 다르지 아니하면 아니 되는 까닭입니다.
곡조는 노래의 결함을 억지로 조절하려는 것입니다.
곡조는 부자연한 노래를 사람의 망상으로 도막쳐 놓는 것입니다.
참된 노래에 곡조를 붙이는 것은 노래의 자연에 치욕입니다.
한용운 시 "나의 노래" 중
지로의 비행기와 달리, 시인의 노래는 세상의 곡조와는 달리하고 싶었다는 강렬한 의지가 보였다.
시인의 노래는 님에게 닿아 천국의 음악과 눈물로 남는다면,
지로의 비행기는 전쟁이라는 광기에 실려 하나도 돌아오지 못한다.
시인이 끝까지 세상의 곡조를 거부하며 자신의 노래를 지켰듯, 지로에게도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
바람은 다시 분다
영화 "바람이 분다"는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현실이 꿈을 무너뜨릴 때, 우리는 계속 꿈을 꿔야 할까?
지로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자신이 만든 비행기가 전쟁터를 향해 날아가는 것을 지켜본다.
그러나 그럼에도 바람은 분다. 그리고 다시 하늘을 본다.
"나의 노래" 말미에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나의 노래가 산과 들을 지나서 멀리 계신 님에게 들리는 줄을 나는 압니다.
비록 세상에 부딪혀 형태가 달라지고 길을 잃는다 해도,
진심을 담은 노래는 결국 전해질 수 있다는 믿음.
그런 믿음을 갖고 어떻게든 살아야만 하는 걸까.
또 다른 창조자의 고백
비슷한 고민을 품은 한 과학자가 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무기를 만든 천재 과학자였고,
스스로를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라고 고백했다.
그의 창조는 전쟁의 종결을 이끌어 냈지만, 모순되게도 새로운 전쟁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두 인물 모두 '창조'와 '파괴'의 경계에 서서, 그 책임을 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바람은 다시 분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영화 "바람이 분다"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꿈을 끝내 놓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이야기였다.
아름다움과 저주의 경계에서, 창조자들이 감내해야 할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그 무게를 짊어지고서라도 끝끝내 고개를 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깊은 울림을 남긴다.
- 평점
- 4.7 (2013.09.05 개봉)
- 감독
- 미야자키 하야오
- 출연
- 안노 히데아키, 타키모토 미오리, 니시지마 히데토시, 니시무라 마사히코, 스티븐 알버트, 카자마 모리오, 타케시타 케이코, 시다 미라이, 쿠니무라 준, 오타케 시노부, 노무라 만사이
- 평점
- 8.0 undefined
- 감독
- 스나다 마미
- 출연
- 스즈키 토시오, 미야자키 하야오, 다카하타 이사오
- 저자
- 한용운
- 출판
- 더클래식
- 출판일
- 2018.04.30
- 직업
- 애니메이션 감독
-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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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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