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 진주
- 평점
- -
- 감독
- 김록경
- 출연
- 이지현, 문선용, 임호준, 이정은, 김진모, 길도영, 오치운, 허웅
설마, 내가 생각하던 그 진주가 맞다니. 이 이름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있었을까.
그 지역의 대학을 나온 한 명으로써 진주 구도심을 다시 떠올려본다.
구도심으로 대표되는 대표되는 시장과 로데오 거리를 처음 보았을 때는 과거의 영광을 엿볼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버스에서 창문 너머로 보이는 줄줄이 이어진 상가의 '임대' 팻말들은 이제 그 흔적마저 사라지고 있는 중이 아닐까 곱씹어보았다.
점점 변하는 시대와, 사라지는 일자리, 떠나가는 사람들과 일련의 과정 속에서 변화를 버틸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변화에는 '사라짐'이 따라올 수 밖에 없다.
창조는 사라진 빈 공간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하지만 창조만으로는 다시는 만들 수 없는 것. 시간이 쌓아 올린 것을 다시 재생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영화 '진주의 진주' 속 삼각지 다방이 꼭 그런 장소다.
누군가에게는 시간으로 쌓아올린 추억과 예술의 장이지만, 그저 낡고 오래된 부담되는 영업장이라는 것.
철거일은 다가오지만, 어떻게든 붙들어 두고 싶은 고군분투 이야기가 바로 영화 '진주의 진주'다.
영화 밖 삼각지 다방이 쌓아올린 역사는 아직 남아있다. 혹시 언젠가 진주를 방문한다면 살펴보는 것도 좋을지 모르겠다.
솔직히 영화를 보면서 인물의 행동에서 의아한 부분이 많았다.
선배에게 좀 더 빨리 시나리오 검토를 해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진주로 직접 가서 새로운 로케이션을 둘러보기 전에, 미리 조사를 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공간의 표현을 굳이 '카페'라고 표현했다. (자신이 정의한 공간은 애초부터 '다방'에 가까운데, 어휘력 문제인 건가 싶었다.)
다방이 사라져서 다방 사장님이 어찌할 수 없다면, 실제로 권한이 있는 새 주인을 찾아보는게 먼저가 아니었을까?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타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면서 까지 해야 하는 일인가 싶기도 했다.
각자의 역할과 방식이 있는데, 괜히 떼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한 편으로 이해해서, 감정적일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을 조금은 너그럽게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사라지는 것과 보존해야 하는 것 사이의 균형.
발전해야만 하는 사회에서, 균형을 잘 이뤄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