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28. 15:49ㆍmovies
- 평점
- 9.4 (1990.05.19 개봉)
- 감독
- 피터 위어
- 출연
- 로빈 윌리엄스, 에단 호크, 로버트 숀 레오나드, 조쉬 찰스, 게일 핸슨, 딜런 커스만, 앨레론 러기로, 제임스 워터스톤, 노먼 로이드, 커트우드 스미스, 칼라 벨버, 알렉산드라 파워스, 레온 포날, 조지 마틴, 조 오피어리, 맷 캐리, 케빈 쿠니, 제인 무어, 라라 플린 보일, 콜린 어빙
1989년에 개봉한 영화가 2024년인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면 믿을 수 있을까?
나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 대부분이 교육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 줄거리
엄격한 명문 사립학교에 한 선생이 부임한다. 새로 온 키팅 선생은 기존의 교육 방식과는 다르다. 문학을 평가하는 책의 서문을 찢으라고 하고, 정원에서 공을 차라고 하거나, 교단 위에 올라서보라고 하고, 무엇보다도 '카르페 디엠' 정신을 가르치는 등 자유로운 사고를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학생들은 키팅 선생이 과거 이 학교에서 활동했던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모임을 재결성하고 시를 낭송하거나 나름의 일탈을 즐긴다. 그러나 이런 '예외'같은 일상도 위기를 맞이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 회원 중 한 명의 지나친 장난으로 모임이 노출되어 학교에 그 존재를 들킨다. 그리고 연기를 하고 싶던 한 회원은 부모의 억압에 결국 자살한다. 그 일을 모두 키팅 선생의 선동으로 몰아 학교에서 쫓아내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죽은 시인의 사회 감상
이 글을 쓰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쉽게 글을 쓸 수 없었다.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 더하면 더했지 영화가 최악은 아닐 것이다.
학창 시절 너무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고, 솔직히 말하면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한 드라마의 독백이 생각났다.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
지금 현실은 대다수의 보통사람은 그래도 안전할 거란 심리적 마지노선마저 붕괴된 후다. 사회 해체의 단계다.
19년… 검사로서 19년을 이 붕괴의 구멍이 바로 내 앞에서 무섭게 커가는 걸 지켜만 봤다.
설탕물밖에 먹은 게 없다는 할머니가 내 앞에 끌려온 적이 있다. 고물을 팔아 만든 3천 원이 전 재산인 사람을 절도죄로 구속한 날도 있다.
낮엔 그들을 구속하고 밤엔 밀실에 갔다.
그곳엔 말 몇 마디로 수천억을 빨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었고 난 그들이 법망에 걸리지 않게 지켜봤다.
그들을 지켜보지 않을 땐 정권마다 던져주는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받아 적고 이행했다.
우리 사회가 적당히 오염됐다면, 난 외면했을 것이다. 모른 척할 정도로만 썩었다면, 내 가진 걸 누리며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내 몸에서 삐걱 소리가 난다. 더 이상 오래 묵은 책처럼 먼지만 먹고 있을 순 없다.
이 가방 안에 든 건 전부 내가 갖고 도망치다 빼앗긴 것이 돼야 한다.
장인의 등에 칼을 꽂은 배신자의 유품이 아니라 끝까지 재벌 회장 그늘 아래 호의호식한 충직한 개한테서 검찰이 뺏은 거여야 한다.
그래야 강력한 물증으로서 효력과 신빙성이 부여된다.
부정부패가 해악의 단계를 넘어 사람을 죽이고 있다. 기본이 수십, 수백의 목숨이다.
처음부터 칼을 뺐어야 했다. 첫 시작부터…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조차 칼을 들지 않으면 시스템 자체가 무너진다.
무너진 시스템을 복구시키는 건 시간도 아니요, 돈도 아니다. 파괴된 시스템을 복구시키는 건 사람의 피다. 수많은 사람의 피…
역사가 증명해 준다고 하고 싶지만 피의 제물은 현재진행형이다.
바꿔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이든 찾아 판을 뒤엎어야 한다.
정상적인 방법으론 이미 치유 시기를 놓쳤다.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 누군가 날 대신해 오물을 치워줄 것이라 기다려선 안 된다.
기다리고 침묵하면 온 사방이 곧 발 하나 디딜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다.
이제 입을 벌려 말하고, 손을 들어 가리키고, 장막을 치워 비밀을 드러내야 한다.
나의 이것이 시작이길 바란다.
[tvN 드라마 "비밀의 숲" 16화, 이창준의 편지]
대한민국 교육이 부정부패로 물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붕괴에 초점을 두고 싶다.
무너진 시스템이 사람을 죽이고 있다.
10대에서 30대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며(통계청, 2022 사망원인 통계),
서울서이초교사 사망 사건으로 알려진 교사들의 죽음과 교권 침해,
최근 한국자살예방협회에는 자살자 급증으로 긴급 성명을 냈다.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에서, 스스로 삶을 끝내는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
이것이 시스템의 붕괴가 아니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학교 다니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교육과정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따라가기 바빴다. 어떻게는 따라가기 위해서 학원을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다녔다. 학교 다니면서 제일 큰 소원이 잠을 제대로 자는 것일 정도였다. 이렇게 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으면 모르겠지만, 나에 대해서 생각하기는커녕 내 앞에 처해진 현실에 휩쓸리기 바빴다. 대학교에서는 코로나가 터지고 뭐가 뭔지도 모른 채로 졸업해 버린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일찍부터 생각했던 것이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불행한 환경에 내 아이를 맡겨 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을 사람들이 불행하고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돈만 준다고 해결될 문제일까. 미래의 불안을 넘어 현실의 나를 스스로 보살펴주지 못하는데 버틸 수 있는 재간이 있을까.
내가 겪어낸 교육과정의 목표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 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 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 이념을 바탕으로, 이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은 다음과 같다.
가. 전인적 성장의 기반 위에 개성의 발달과 진로를 개척하는 사람
나. 기초 능력의 바탕 위에 새로운 발상과 도전으로 창의성을 발휘하는 사람
다. 문화적 소양과 다원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품격 있는 삶을 영위하는 사람
라. 세계와 소통하는 시민으로서 배려와 나눔의 정신으로 공동체 발전에 참여하는 사람
[2009 개정 교육과정 총론, 교육과정의 구성과 방향 - 추구하는 인간상]
이렇게 좋은 말을 붙여서 학생을 가르친다지만 결국 평가는 답이 정해진 문제와 수능을 통해서 평가한다.시험 성적의 향상만을 목적으로, 그 이외의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며, 경쟁하는 서로를 적으로 만든다. 다른 사람이 아래로 가야 내가 위를 차지할 수 있는데, 어떻게 서로를 믿고 사랑할 수 있을까. 그저 점수받는 기계로 전락할 뿐이다. 스마트폰으로 거의 모든 정보를 찾는 시대에 이런 평가가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인가?
시험과 관련 없는 활동은 점차 사라져만 갔다. 정답만을 찾은 시험에서 '내 생각'이라는 것은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을 들을 채도 없는데, 어떤 창의성과 공동체 정신을 실현할 수 있을까. 교육과정이 지향하는 인간상에서 정반대의 결과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다.
교육이, 학교가 중요한 이유는 아이들이 처음으로 만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 때만큼은 아이에게 전부인 학교에서 가장 폭발적인 성장을 한다. 몸과 마음이 자라고 한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기를 억압적인 환경에 놓아버린 다면 어딘가는 고장 난다. 학교가 단지 대입을 위해 내신 점수가 안 나왔다고 스스럼없이 자퇴하는 그런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죽은 시인의 사회'는 개봉된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서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한 사람으로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고, 함께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되어야 한다. 혁명 수준의 교육 개혁이 없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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